한자 8급 시험
녀석들의 한자 8급 시험이 있는 날이었다.
한글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한자가 웬 말인지 모르겠지만, 유치원에서 대부분의 아이들이 급수 시험을 보는 듯하여 신청하였다. 왠지 신청하지 않으면 그들만의 리그에서 소외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앞뒤 가리지 않고 신청했다.
녀석들 중의 2/3은 한글을 자연스럽게 습득해나가고 있다. 1호는 책 읽기 속에서 스스로 하였고, 3호는 올해 1,2월에 바짝 시작했다가 흐지부지했지만 그때를 계기로 비교적 자연스럽게 진척되고 있다. 하지만 2호는 남달랐다. 아니 사실은 2호가 내 생각엔 자연스럽다. 닦달하고 시키지 않았으니 한글을 모르는 게 당연하다. 안타깝게도 유치원 친구들 중에 거의 유일하게 한글을 모르지 않을까 싶지만, 굳이 캐묻지 않았다. 그렇지만 녀석은 평온하다.
유치원에서 그림을 그려 대회에 제출해서 입상 혹은 장려상을 받고, 동와 구연대회에서도 비슷한 성적을 거두었다. 어떤 대회는 참가만하면 상을 주는 것 같았고, 어느 대회는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상은받았다. 유치원에서 활동한 것으로 진행되는 것이라서 잘 알지 못하고 늙은 엄마에겐 돈은 들었지만, 다행히 품은 들지 않는 편이었다. 물론 닦달하고 시켰으면 더 잘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녀석들이 뭐든 거부감을 갖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비슷한 느낌의 한자 8급시험 아침.
그래도 걱정이 되어 물어봤다. 한글도 못쓰는 2호에게 너 한자 쓸 수 있니?라고 물었다. 역시나 아니라고 했다. 2호는 예상된 답이었다, 하지만, 1,3호도 아니라고 대답했다. 순간 헉했다. 그리고 시험 직전 유튜브를 켜고 질문과 답을 이어나갔지만 첩첩산중, 짝꿍에게 오늘 그냥 마음 편히 견학 느낌으로 다녀오면 될 것 같다고 전했다. 그리고 이어서 출제양식을 살펴봤다. 보아하니 꽤 까다로웠다. 훈을 쓰는 것, 음을 쓰는 것, 둘 다 그리고 획수 이 정도였나? 한 가지로 쓰는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검은색 사인펜과 수정테이프를 처음 써보는 녀석들에게 수정테이프 사용방법을 알려주는 것 또한 허들이었다.
2시 시작, 1시40분까지 고사장 입실,
토요일 막히는 길을 뚫고 아슬아슬하게 학교 정문에 도착해서 뛰었다.
예상과 다르게 건물 입구부터는 입장 불가,
고사실이 어디인지도 모를 것 같은 녀석들에게 제3 고사장이라고 소리쳤지만. 아는지 모르는지 친구들을 만났다는 기쁨, 흥분에 내 소리는 들리지 않았는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다.
그리고 다소 일찍 퇴실한 아이들은 시험과는 무관하게 친구들과 운동장 뛰어놀기에 바빴다.
게다가 아침에 실력으론 묻지 않아도 될 수준이었지만, 시험 잘 봤는지 물었더니, 예상과 다르게 다 잘봤다고 했다. 심지어 100점일 것 같다고 허세를 부렸다.
엄마인 나도,
실제 시험 당사자인 녀석들도,
결과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적당한 긴장감을 갖고 경험해볼 수 있는 그런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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